5월, 나에게 가장 아픈 계절
5월은 보통 가장 따뜻하고,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계절이다.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날씨, 아무 이유 없이 들뜨는 공기. 하지만 나에게 5월은 오래도록 가슴 아픈 달이었다. 그 아픔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오랜 시간 머물러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2021년 5월, 내 마음은 유난히도 공허했다. 무엇보다, 더 이상 슬픔에만 머물러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도 5월답게 날씨는 참 좋았고, 가만히 있어도 기분이 나아질 법한 하루였다. 온 가족이 함께 모인 자리였지만, 내 안의 생각은 좀처럼 정리되지 않았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막막했다. 그리고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내 자신이 유난히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날은 오빠의 기일이었다. 매년 5월 11일, 나는 사랑하는 오빠를 떠나보낸 그 날을 가슴에 품은 채 하루를 보낸다. 그렇게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나는 다시 홀로 생활하는 서울의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가슴이 먹먹했고, 후회와 슬픔이 뒤섞인 감정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오빠가 떠난 지도 어느덧 1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오빠를 떠나보낸 바로 그 날을 제외하고는, 오빠를 그리워하며 소리 내어 우는 일은 언제나 혼자 있을 때뿐이었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님의 마음보다 더 깊은 슬픔이 있을까. 나는 감히 부모님 앞에서 내 눈물을 보일 수 없었다. 그래서 언제나 조용히, 나만의 시간 속에서 슬픔을 삼켜야 했다. 그렇게 오빠가 떠난 이후, 5월은 나에게 늘 슬픔이 가득한 달로 남아 있었다.
그해 5월, 슬픔보다도 더 나를 힘들게 한 건 설명할 수 없는 무기력함이었다. 그 감정을 떨쳐내고 싶었다. 그래서 무언가에 몰두하고 싶었고, 이번에는 끝까지 해낼 수 있는 것을 찾고 싶었다. 사실, 나는 스스로 시작한 일을 끝까지 해낸 적이 거의 없었다. 처음엔 호기롭게 시작하다가도, 조금만 계획이 어그러지면 금세 손을 놓아버리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에서는 늘 열심히 일했다. 돈을 받는 일이니까, 하기 싫어도 해야 했고, 아무도 시키지 않아도 책임감을 갖고 일했다. 어쩌면 그런 ‘외부의 기준’ 없이, 오직 내 의지로 꾸준히 해본 경험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번엔 진심으로 바랐다. 무기력함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그런 나를 변화시킬 무언가가 필요했다. 고민 끝에 떠오른 건 영어 공부였다. 어쩌면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한 번쯤 해보는, 그 ‘평생 숙제’ 말이다. 영어는 나에게 늘 도전이었다. 온라인 수업도 듣고, 책도 사고, 유튜브도 활용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도전해봤지만, 번번이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방식 자체를 바꿔보기로 했다. 혼자서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실제로 대화하며 배워보고 싶었다.
그렇게 엉뚱하면서도 단순한 결론에 도달했다. “외국인 친구를 만들어보자.”
슬픔과 무기력함에 잠식당했던 5월, 나는 그 모든 것을 이겨내기 위해 외국인 친구를 만들겠다는 다소 유쾌한 결심을 하게 됐다. 그리고 그 결심은 곧 행동으로 이어졌다.
영어 회화 실력을 늘리기 위해 언어 교환 앱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물론 걱정도 있었다. 대다수의 친구 만들기 앱은 본래 목적과 다르게, 범죄나 비정상적인 목적의 사용자들로 인해 위험한 공간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앱을 선택하기 전, 꽤 많은 시간을 들여 비교하고 조사했다.
결국 내가 선택한 앱은 인지도가 높지 않아 비교적 ‘청정 구역’이라는 평을 받은 곳이었다. 완벽한 곳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다른 앱에 비해 상대적으로 건전하다는 정보가 있었다. 이 앱은 앞으로 ‘M’이라고 부르려 한다.
앱을 설치하고, 새로운 세상에 들어선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핸드폰 너머, 나와는 다른 나라,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 한 화면 속에 존재했다. 기대감이 조금씩 피어났다. M 앱도 다른 대부분의 앱처럼 프로필을 작성해야 했고, 사진을 올릴 수 있었다. 얼굴이 드러난 사진은 꺼려져서, 내가 좋아하는 바다 사진을 올렸다. 경량 패딩을 입고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 있는 내 뒷모습, 그 사진 속 윤슬이 참 예뻤다. 그리고 이름, 사는 나라, 간단한 자기소개를 적었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추천 친구 목록에 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언어 교환 앱인데, 대부분 이성 친구만 추천됐다. 처음엔 실망스러웠다. 역시 앱이란 다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몇 외국인들이 메시지를 보내왔지만, 나는 이미 한 차례 로맨스 스캠을 골탕 먹인 전적이 있어서, 대화 초반의 멘트만 봐도 어느 정도 구별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의심스러운 인물들은 대부분 걸러낼 수 있었다.
하지만 사기꾼이 아니더라도, 익명성이 보장되고 모바일이라는 점을 이용해 변태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사람들도 많았다. 처음엔 정상적인 대화를 하다가도, 점점 노골적인 언행을 하거나 얼굴 사진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었다. 물론 그들 중 다수는 자신들의 사진을 보내왔지만, 그것조차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며칠 동안 외국인들의 프로필만 구경하며 지내던 중,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각 프로필에 'km‘가 표시되어 있었던 것이다. 처음엔 그 의미를 몰랐지만, 곧 그 숫자가 ‘나와의 거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한국에 살고 있으니,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만 보여지는 줄 알았는데, M 앱을 이용하는 사람들과 나의 거리를 보여주고 랜덤으로 사람들이 보여지는 것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이전과는 달리 정상적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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